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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도에 육박하던 런던의 썸머타임, 비로소 사랑






살을 쪼는 듯한 따가운 햇살, 진을 빼놓는 무더운 밤. 불쾌함의 극치로 우리를 초대하는 장마와 예측할 수 없어 무력하게 만드는 소나기. 내게 여름은 기다려본 적 없는 계절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건너뛰기를 하고 싶은 계절, 여름이 가장 두려웠던 이유는 무더위와 불쾌감도 아닌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이었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 아니 무엇이든 좋으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 사춘기처럼 한철이면 지나가고 사라져야 할 잠 못 드는 밤들이 여름이면 늘 현재진행형이 되어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여름이 오면 삶의 반경을 줄이며 감정의 자극을 피하려 애썼다. 여름밤의 한강, 한낮의 피크닉, 맥주와 영화. 낭만과 멀어진 여름은 일정한 심박도를 유지하며 업무의 성장을 도모하기도 했으니 이만하면 꽤 괜찮은 결단이었다고 믿었다. 우연히, 36도에 육박하는 런던에 닿기 전까지는.


늘 런던에 닿기를 꿈꿨지만, 사랑했던 영화와 음악의 고향인 그곳에 처음 발을 내딛는 게 신발 밑창이 녹을 것만 같은 여름의 한가운데가 될 줄은 몰랐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7월, 유럽은 썸머타임이었다. 오후 5시에 더위가 절정에 다다르고 저녁 9시가 돼서야 조금씩 어두워지는 거리를 거닐며 한 겹 두 겹 옷을 벗고 바닥난 물통을 몇 번이나 갈아치웠다. 긴머리를 닭살스러운 양갈래로 땋아본 것도, 무릎 위로 훌쩍 올라오는 짧은 원피스를 입어본 것도, 발등 위에 선크림을 발라본 것도 그 여름이 처음이었다. 숨이 넘어갈 듯 더운 타국의 구석구석을 돌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빠르게 뛰는 심장 템포에 맞춰서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는 것과 뜨거운 햇살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어둑해지는 밤거리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며 열을 식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밖을 나섰다. 여름의 여름, 더위 속 더위를 헤매며 땀을 쏟고 때로는 울음을 터뜨리며 낯선 나의 에너지를 발견하는 보름이 지나고 내게 남겨진 건 까맣게 탄 어깨와 등허리,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이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여름은 여전히 남아있던 7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그 두근거림을 잠재우는 대신 만끽하기로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알쏭달쏭한 마음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런던도 마르세유도 아닌 서울의 작은 동네를 부지런히 걸었다. 여름밤의 한강과 한낮의 피크닉과 맥주와 영화도 되찾았다. 서른 번째 여름을 지나고 나서야, 여름을 기다리게 됐다.


나의 예측할 수 없는 날의 기분 좋은 핑계, 여름. 어서 와. 







썸머타임의 환한 밤은 그 열기가 더욱 길었다.


















환한 오전에 누렸던 호사.

윔블던의 부엌 빛은 여전히 아른거린다.


















런던 카니자로 파크에서 첫 메모.

"바람은 소리내지 않는다."
















노팅힐 서점에서 노팅힐의 애나처럼 가슴이 뛰었다.

















마르세유. 뜨거운 공기 중에 마셨던 뜨거운 라떼의 맛




















납작복숭아로 탈진을 피했던 그 해 여름

















런던에서 펼쳤던 내 책 이름처럼,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타국에서 꽃을 사는 일은 묘한 안정을 준다.



















마르세유의 해변은 다시 가지 않을 것.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함께 뜨거운 유럽을 거닐어 준 나의 친구,

서정



















가랑비메이커 / 에세이스트, 문장과장면들 대표


@garangbimaker


매일 쓰고 이따금 책을 펴낸다.

영화와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아주 오래전에>에서는 애나로 불린다.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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